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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라운드(Down Round)에 대한 고찰

최근 수정일: 2024년 8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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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증하는 벤처 다운라운드

벤처 혹한기가 이어지며 전 세계적으로 스타트업 투자에서 다운라운드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전 라운드 대비 기업가치를 낮춰서 진행하는 자금 조달을 통틀어 의미하는 ‘다운라운드’는 창업자, 직원 및 기존 투자자 모두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스타트업에게는 일종의 ‘비상 상황’을 의미합니다.

특히 최근의 다운라운드는 단순한 스타트업의 경영 실패를 넘어 팬데믹 기간 비이성적이었던 자산 가격의 정상화, 그리고 2022년부터 이어져 온 고금리 환경의 복합적 산물이란 점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창업자와 투자자들 또한 복잡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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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vs. 2023 3Q 다운라운드 통계 비교

카르타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 진행된 시리즈 D 이상 후기 벤처 투자의 25% 이상이 다운라운드였으며, 다운라운드를 진행한 기업은 평균 절반에 가까운 기업가치 하락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직도 많은 기업이 런웨이가 남은 상황에서 다운라운드를 주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2024년에도 이러한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운라운드 - 이론 편

다운라운드가 이뤄지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요즘과 같이 자금 조달 시장이 경색되어 회사의 성과가 양호함에도 불구, 기업가치를 낮춰서 자금 조달에 나서야 하는 사례가 있는 반면 회사가 성장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서 흑자 전환에도 실패, 계속 기업과 폐업 사이를 고민할 때 회사의 가능성에 한 번 더 베팅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이 ‘긴급 구호 자금’ 형태의 지원에 나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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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운라운드 케이스 사례

위의 다운라운드 사례는 시장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시리즈 A 당시 발행 후 기업가치(Post) 기준 $15Mn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던 기업이 시리즈 B 라운드에서 발행 전 기업가치(Pre)를 다시 $10Mn으로 낮추면서 시리즈 B의 발행 가격이 33% 하락한 것입니다.

물론 실제 사례가 이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시리즈 A 투자자들의 경우 희석 방지 조항을 포함한 다양한 다운라운드에 대비한 투자자 보호 조항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해당 회사가 시리즈 A 주주들의 주당 발행 가격을 보상하기 위해 추가 주식을 발행해야 했다면 이는 또다시 시리즈 B 클로징 이후의 지분율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보통 이때부터 투자자들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다운라운드가 투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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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닷컴 붕괴와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급증했던 다운라운드 (출처: Pitchbook)

다운라운드의 진행이 단순한 ‘주주명부~캡테이블’의 기계적 조정에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운라운드를 진행할 경우 첫 번째로 직원들이 할당받은 스톡옵션인 ESOP의 가격이 다운라운드에 따라 하락하게 됩니다. 게다가 ESOP의 경우 보통주와 함께 투자자들이 보유한 우선주 대비 후순위인 경우가 많아 다운라운드를 통한 기업가치 하락 폭이 크다면 이는 스타트업에 헌신해 온 많은 직원의 자산 하락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창업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주 형태로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는 창업자의 경우 다운라운드 진행 시 가장 큰 지분 가치 하락을 경험하게 됩니다. 게다가 기존 투자자의 희석 방지와 같은 장치들이 작동하게 되면 이러한 가치 하락 폭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투자자들의 신뢰에도 금이 가게 됩니다. 벤처 투자자들은 스타트업의 경영에 대한 부분을 창업자 또는 CEO에게 위임한 것인데 결과적으로 회사가 이전 투자 단가 대비 낮은 가치로 신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더라도 ‘경영 실패’의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다운라운드를 시작하게 되면 투자자들은 기존 경영진을 여전히 지지하는 그룹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투자자들로 나뉘게 됩니다. 이는 다운라운드 진행을 더욱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다운라운드가 이론대로 움직이지 않는 이유

일반적인 벤처 투자 계약서가 다운라운드에 대비한 다양한 조항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실제 해당 사항이 발생하였을 때 분쟁 없이 추가 자금 조달이 손쉽게 이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회사가 꾸준히 우상향으로 성장한다는 비전에 모두가 공감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일반적인 자금 조달과 달리 다운라운드 상황이 발생하면 창업자, 기존 투자자, 신규 투자자 모두 제각각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1️. 신규 투자자의 리스크 부담

다운라운드 상황에서 신규로 자금을 투입하는 투자자들은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하게 됩니다. 모멘텀이 중요한 벤처 투자에서 어떤 이유에서건 회사의 성장성이 꺾여 기업가치가 내려가게 된다면 ‘기업 가치 하락에 대한 투자 메리트’보다 ‘모멘텀이 사라진 실패한 기업’이란 낙인이 찍히기 일쑤입니다.

때문에 신규 자금을 투입하는 투자자는 최대한 기업 가치를 낮추고 확보할 수 있는 지분율을 높여 해당 리스크를 상쇄하기를 원합니다. 혹여라도 회사가 턴어라운드에 성공해 다시 펀딩 라운드를 진행한다면 사전에 기업가치를 최대한 낮춰놓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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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운라운드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하는 제이슨 칼라카니스의 트윗

문제는 신규 투자자들의 이러한 리스크-리턴 프로파일이 기존 투자자들의 우선주 권한과 충돌한다는 점입니다. 신규 자금 투입을 위한 주당 발행 가액을 낮추면 낮출수록 기존 주주가 보유한 희석 방지 조항에 따라 기존 주주에게 발행할 주식 수도 늘어나게 됩니다. 그 결과 낮은 가격에 신규 자금을 투자해 지분을 많이 확보하려는 신규 투자자의 지분율은 기존 주주를 위한 추가 주식 발행 때문에 희석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한 마디로 악순환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다운라운드 상황에서 신규 투자자를 유치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신규 투자자가 투자를 원하더라도 기존 주주가 보유한 희석 방지 조항에 따른 추가 주식 발행 권한을 포기하도록 사전에 요구하는 선결 조건을 넣기도 합니다. 때문에 다운라운드와 같은 구조조정 상황에서는 기존 주주들이 우선주를 포기하고 보유 주식을 보통주로 전환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기존 우선주 권리를 삭제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죠.

결국 기존 주주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신규 자금이 투입되지 않으면 회사는 폐업 또는 자산 처분과 같은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당장 손실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 결과 여전히 회사의 회생 가치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기존 주식을 보통주로 전환하더라도 신규 자금 수혈을 받아들이고 추후 일부 자금 회수라도 노리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기업 회생을 위한 구조조정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죠.

하지만 스타트업의 다운라운드 상황에서 낮은 기업가치에 투자를 희망하는 신규 투자자가 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인 경우도 많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기업의 미래 가치에 베팅하는 벤처캐피탈 입장에서는 다운라운드를 통해 기업가치가 낮아진 스타트업에 복잡한 협상 과정을 거쳐 투자하기보다는 여전히 기업가치와 관계없이 투자자들이 줄을 서는 핫한 스타트업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실제로 다운라운드는 기존 투자자들의 주도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Pay-to-Play 조항입니다.

2️. Pay-to-Play와 죄수의 딜레마

Pay-to-Play는 기존 투자자들의 신규 자금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해 참여하는 투자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참여하지 않는 투자자들에게 불이익을 제공하는 투자 조항을 의미합니다. 만약 다운라운드 상황에서 일부 기존 투자자들이 신규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다면 다른 투자자들에게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Pay-to-Play를 제시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신규 투자자가 없는 상황에서 기존 투자자들 간 자금을 모아 회사가 회생할 수 있는 충분한 자금을 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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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세콰이어캐피탈은 자신들이 이사회에 참여하던 범죄 알림 기업 ‘시티즌’의 신규 라운드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기존 보유 지분을 전량 보통주로 전환당하였습니다. 벤치마크캐피탈 또한 10년간 투자자로 이름을 올려온 프리미엄 식료품 배달앱 ‘굿에그’의 다운라운드 참여를 포기하며 빌 걸리가 이사회에서 사임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Pay-to-Play는 많은 소액 투자자에게 고통스러운 의사 결정을 요구합니다. 신규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기존 투자자 또한 펀드 자금을 기존 포트폴리오 기업의 지원을 위해 사용할지 아니면 새로운 기회에 베팅하기 위해 기존 투자 건의 실패를 인정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추가 자금을 투입하였는데도 회사가 망할 확률, Pay-to-Play를 포기하고 주식을 상각 처리하였는데 회사가 다시 회생할 시나리오도 모두 고려해야 합니다.

작년 상반기 국내에서 벌어졌던 그린랩스 사태 또한 Pay-to-Play가 적용된 대표적인 투자 사례로 알려져 있습니다. 2022년 1월 무려 1,700억 원에 달하는 시리즈 C 자금을 투자받은 그린랩스가 1년 만에 위기에 빠지자 시리즈 C 당시 투자를 리드한 BRV캐피탈매니지먼트와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는 500억 원 추가 투자를 결정하였습니다. 당시 사태 해결을 주도한 BRV와 스카이레이크는 기존 투자자들의 신규 라운드 참여 조건을 최소 50억 원으로 내걸었는데 이를 두고 SK스퀘어 등 소수지분 투자자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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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대주주인 BRV 주도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그린랩스

결국 시리즈 C 당시 350억 원을 투자했던 SK스퀘어는 추가 투자에 참여하지 않고 보유 지분 전액을 상각 처리하였습니다. 사업적인 시너지가 중요한 전략적 투자자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상황을 주도하지 않는 상황에서 단순히 자금만 추가 투자하는 것에 부담이 있었을 것입니다. 투자한 금액대로 역할이 정해지는 다운라운드 상황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자한 BRV가 이를 해결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귀결입니다. 결국 그린랩스는 BRV 주도로 추가 투자 및 최대주주 변경, 사업 턴어라운드를 수행 중에 있습니다.

3️. 청산우선권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벤처 투자의 청산우선권(Liquidation Preference)의 경우 우선주의 권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투자자 보호 조항입니다. 회사 청산 시 우선주 투자자가 보통주 대비 우선하여 회사 매각 대금을 수령함을 의미하는 청산우선권은 기업 가치에 관계없이 회사가 지금까지 조달한 금액 이상으로 매각 시 우선주 보유자들은 투자 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합니다.

결국 회사가 다운라운드를 진행한다는 것은 현재 회사를 매각하더라도 우선주 투자자의 원금 회수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전 라운드에서 회사가 1,000억 원 기업가치로 100억 원을 조달하였는데 지금 회사 매각 시 100억 원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시나리오 중 하나로 돈을 더 투자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이죠.

핵심은 성장이 꺾이고 흑자 전환도 실패한 스타트업은 매각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핵심 특허나 자산이 있지 않다면 단순 거래액이나 반복 매출만으로 몇백억 원 대의 M&A를 성사시키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결국 ‘청산우선권’이 투자자의 지분 가치를 보호해 줄 것이란 시나리오도 이론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다운라운드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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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0월 갑작스럽게 문을 닫은 물류 스타트업 Convoy

2023년 10월 갑작스럽게 폐업을 선언한 물류 스타트업 Convoy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누적 투자금만 1.5조 원에 달했던 Convoy는 2023년 들어 운송 단가 하락과 수요 감소가 겹치며 급격한 매출 하락을 경험합니다. 그 결과 신규 투자자 유치 및 기존 투자자들의 다운라운드도 모두 실패하면서 자연스럽게 사업 중단을 선언한 것입니다.

결국 회사는 기존 디지털 자산만 장부가치로 Flexport에 넘기게 되었으며 남아있는 자금은 채무 변제에 우선 사용하게 되면서 베일리 길포드, 티로우 프라이스와 같은 지분 투자자들은 투자금 전액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청산우선권은 구경도 못 해보고 말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회사의 회생 가능성

다운라운드는 미래가 불확실한 스타트업에 다시 한번 턴어라운드의 기회를 제공하는 마지막 기회와도 같습니다. 때문에 다운라운드를 리드하기로 결정한 투자자 또한 회사의 사업 개선 계획을 정밀하게 설계하고 필요하다면 CEO를 교체하는 강수를 두면서도 이를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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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Pay-to-Play와 같은 복잡한 조항을 가져오면서까지 다운라운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각 라운드 별 리드가 확실하고, 이사회 중심으로 경영이 이뤄지고, 모든 주주가 하나의 주주간 계약서를 작성하는 제반 조건이 갖춰져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래야만 서로 논쟁을 이어가더라도 정해진 기간 내 결과를 도출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라운드 별 리드가 불분명한 십시일반 투자가 이뤄지고, 이사회 없이 창업자 중심으로 운영되며, 각 투자자가 개별 계약서를 작성하는 국내의 스타트업 투자 환경에서 질서 있는 ‘다운라운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오히려 돌파구 없는 주주 간담회가 이어지며 회사를 살려보고자 하는 창업자만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대출을 알아보거나 개인투자자에게 손을 벌리는 안타까운 사례도 자주 목격됩니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는 ‘이사회 참여 없는 벤처투자’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투자자들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15년간 벤처 투자를 로켓에 올라타는 방식으로 접근한 수많은 소규모 벤처캐피탈이 지금과 같은 다운라운드 상황에서는 자신들의 투자금을 지키거나 턴어라운드를 주도할 어떠한 수단도 마땅치 않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름있는 VC가 리드하는 라운드에 일부 참여하는 것’이 벤처 혹한기에는 최악의 투자 전략이란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행이 돌고 도는 것처럼 벤처 투자 전략 또한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특히 2024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2021~2022년 빈티지 스타트업의 폐업은 벤처캐피탈들이 스타트업 투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투자 전략의 수정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투자 시장 회복과 관계없이 변화는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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