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사업

30인 미만 사업장, 최대 180만원 HR 플랫폼 지원

2017년 8월, 코드박스는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했습니다. 당시 포스텍홀딩스 창업보육센터의 법인 설립 지원 사업을 통해 법무사를 만났고 자본금을 정해야 한다는 말에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는 보통 얼마로 자본금을 설정하나요?”

돌아온 답은 500만 원이었습니다. 다행히 부담스러운 금액도 아닌터라 별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과연 500만 원은 회사를 시작하기에 충분한 금액이었을까요? 사실 당시 저는 자본금이라는 숫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출발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설립할 때 자본금은 얼마가 적당한지 묻습니다. 명확한 기준없이 서로 다른 말들이 뒤엉키는 가운데 막연하게 자본금이 클 수록 좋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진짜 문제는 자본금의 크기가 아니라 자본금이 무엇인지 모른 채 설정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자본금이라는 숫자가 왜 생겨났고 지금까지 어떤 기준으로 작동해 왔는지 그리고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때 어떤 혼란이 반복되는지를 차근차근 따라가 보려 합니다.

주식회사에 쏟아지는 불신

지난 글 <자본을 모으는 가장 강력한 제도, 주식회사의 탄생>에서 우리는 주식회사가 왜 필요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여러 사람이 나누는 구조, 주식이라는 단위로 권리를 쪼개는 방식, 그리고 법인격과 유한책임을 통해 실패 이후에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주식회사 제도가 발전하면서 자금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주식회사가 법인격이라는 개념을 통해 거래의 주체를 개인이 아닌 ‘회사’로 분리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대표 개인과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독립된 하나의 존재와 관계를 맺게 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채권자는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회사는 믿을 만한 곳인가?”

자본금, 회사의 신뢰를 제도화하다

17세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주식회사의 초기 모델을 만든 후 영국·프랑스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이 제도가 퍼져나갔습니다. 주주들은 유한책임 구조 덕분에 출자한 범위까지만 책임을 졌고, 회사가 파산했을 때 채권자는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문제는 당시 회사를 평가할 수 있는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이 회사는 얼마를 출자해서 만든 회사다’라는 사실은 중요한 정보였습니다. 자본금이 큰 회사일수록 실체가 있는 조직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자본금’입니다. 자본금의 의미는 회사의 재무상태를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라 ‘이 회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최소한 이 정도 규모의 위험은 함께 감당하겠다고 약속하는 표시’에 가깝습니다. 19세기 미국에서는 자본금을 ‘채권자를 위한 신탁기금(Trust fund)‘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주주들이 회사에 넣은 돈은 쉽게 빼낼 수 없고, 회사가 파산할 경우 채권자들이 우선적으로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운 것입니다.

국가는 이 숫자를 등기소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신용평가도, 재무제표도 없던 시대에 자본금은 거래 대상자가 믿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숫자였습니다. 그렇게 자본금은 거래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 요건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은행이 보호하는 자본 vs. 시장이 평가하는 자본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제도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의 신뢰도를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졌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신용평가와 재무제표가 있습니다. 회사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나면서, 굳이 자본금이라는 하나의 숫자에만 의존할 필요는 줄어들었습니다.

이 변화 속에서 자본금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기 시작합니다. 하나는 ‘자본금을 여전히 중요한 신뢰의 기준으로 보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금의 역할이 이제는 제한적이라고 보는 시각’입니다. 이 두 관점은 각국의 회사법과 금융 시스템 속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독일식과 영미식이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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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본금을 바라보는 2가지 관점

- 독일식: 자본금은 여전히 주식회사를 보는 중요한 신뢰의 기준이다

- 영미식: 회사 신뢰도에 있어서 자본금의 역할이 이제는 제한적이다

독일식 자본금 관점의 핵심, 채권자 보호

독일식 관점은 자본금의 본래 목적과 역할에 충실합니다. 자본금을 여전히 중요한 신뢰의 지표로 보는 것입니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은행 중심(Bank-based) 금융 시스템을 운영해 왔습니다. 기업들이 외부 자금을 조달할 때 주식이나 채권 발행보다는 은행 대출에 의존하는 비중이 높았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채권자, 특히 은행 보호가 핵심 과제가 됩니다. 그 결과 독일 회사법은 자본금을 ‘채권자를 위한 완충지대’로 유지해 왔습니다. 실제로 독일 상법은 현재도 유한회사의 최저자본금을 25,000유로, 한화 약 4,300만 원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26년 1월 기준)

영미의 자본금 의미 축소 배경, 시장 평가 체계

반면 영국과 미국에서 발전한 관점은 다릅니다. 이들 국가는 시장 중심(Market-based) 금융 시스템을 기반으로 성장했습니다. 기업들은 은행 대출보다 주식 발행이나 회사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고, 기업의 신뢰성은 개별 금융기관이 아니라 시장 전체에서 평가됐습니다. 주가, 신용등급, 재무제표, 공시 정보 등 다양한 신호들이 축적되면서 자본금 하나에 부여되던 역할은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대부분 주는 최저자본금 요건을 폐지했습니다. 델라웨어주처럼 액면가 제도를 유지하는 곳도 있지만, $0.00001과 같은 극히 작은 금액으로 설정해 사실상 의미를 없앤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본금이 제도적 흔적만 남아 있는 셈입니다.

참고

액면가‘란 주식이나 채권 등 유가증권에 표시된 명목상의 가격을 뜻합니다. 회사 설립 시 정관에 기재되지만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과는 무관합니다. 델라웨어 주처럼 액면가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곳에서는 많은 기업들이 극히 낮은 액면가를 설정해 세금 부담을 줄이면서도 매년 세금액을 예측 가능하게 유지합니다.

한국의 주식회사가 마주한 이중 잣대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1962년 한국 상법은 당시 가장 체계적이었던 독일 상법의 영향을 받아 제정됐습니다. 그 결과 자본금을 채권자 보호 장치로 보는 독일식 관점이 법 제도의 기본 틀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후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며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습니다. 2010년대 들어 벤처 생태계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VC 투자가 활성화되고, 스타트업이 늘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장은 자본금보다 성장 가능성과 사업의 확장성을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투자금은 대부분 자본금이 아닌 주식발행초과금의 형태로 유입됐고, 자본금은 시장에서 점점 의미가 옅은 숫자로 취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실은 ‘코드박스’입니다. 코드박스는 법인을 설립한 지 다섯 달 만에 약 6억 원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당시 멤버는 네 명, 자본금은 500만 원이었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투자 과정에서 자본금은 한 번도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사실 한국도 2009년 최저자본금 규정이 폐지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자본금 제도 자체는 여전히 남아 있는데요. 지금도 주식회사를 설립할 때 자본금을 정관에 기재해야 하며 자본금 변경 역시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보수적인 법의 기준과 역동적인 시장의 기준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구조에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야 하는 이는 창업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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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와 현실 사이, 창업자를 가로막는 자본금의 벽

제도와 현실이 서로 다른 기준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창업자는 무엇이 문제인지, 더 나아가 추후 무엇이 문제가 될지조차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이 차이는 처음부터 눈에 띄지는 않을 수 있지만 갑작스럽게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법인을 처음 만드는 단계부터 모습을 드러냅니다. 최저자본금 제도가 폐지된 이후, 자본금을 설정할 때 참고할 만한 제도적 기준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법인을 설립한 뒤 사업자등록을 하고 법인 계좌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자본금이 적다는 이유로 세무서에서 등록이 반려되거나 금융기관이 계좌 개설을 거절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창업자는 제도와 현실의 간극을 오롯이 혼자 판단해야 하고, 그 선택은 곧바로 현실의 문제로 나타나는 겁니다.

운영이 시작된 후 임대료나 인건비 같은 초기 비용을 감당하기에 자본금이 충분하지 않으면 대표 개인의 돈으로 운영비를 메우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이때 회사 장부에는 대표가 회사에 빌려준 돈이 부채로 쌓여 가수금이 늘어나게 됩니다. 회사가 돈을 번 것도 아닌데 부채만 늘어나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재무 상태는 실제보다 훨씬 불안정해 보입니다.

정부 지원사업에 나서보면 이 문제는 더욱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지원사업 심사에서는 재무 상태가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는데, 가수금처럼 상환해야 할 부채가 자본금에 비해 많아지면 재무구조가 불안정하다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특히 누적 적자로 자본잠식 상태에 놓인 경우에는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일이 흔합니다. 성장성이나 기술력과는 별개로 숫자로 정리된 재무 상태가 기회 자체를 가로막는 셈입니다.

이 모든 일에 큰 탈 없이 넘어갔을지라도 분쟁이 생기는 순간부터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자본금과 실제 출자 내용이 맞지 않거나, 각 주주가 얼마를 부담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명확하지 않으면 신뢰에 금이 갑니다. 설립 초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구두 합의들이 회사가 성장하거나 경영 상황이 나빠지는 시점에 갈등의 씨앗으로 되살아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참고

가수금(假受金)’은 회사 계좌에 들어온 돈의 성격이 아직 명확하지 않을 때 임시로 처리하는 회계 계정입니다.

스타트업에서는 회사 자금이 부족해 대표가 개인 돈을 회사 계좌에 넣으면서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 회사 입장에서는 대표에게 나중에 돌려줘야 할 돈이기 때문에 장부에는 부채로 기록됩니다.

가수금이 장기간 정리되지 않으면 재무구조가 실제보다 불안정해 보이거나, 세무상 증빙 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자본금이 늘 찝찝하게 남는 이유

처음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자본금 500만 원은 충분한가요?”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은 없습니다. 정답이 있다면 ‘알 수 없다’에 가깝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자본금 제도 역시 시장의 변화에 맞춰 달라져야 하겠지만, 상법은 한국 상거래의 근간이 되는 제도인 만큼 그렇게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이 당장 해결되기 어려운 현실이라면 자본금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자본금 제도에 대응할 때 중요한 건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우리는 모호한 상황에서 실패 확률을 낮추는 선택을 해야하죠. 그래서 ZUZU는 설립 단계에서 판단에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제공하고, 설립 이후에는 증자와 감자를 포함한 자본금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돕습니다.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불필요하게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약 500여 개의 회사 설립을 함께하며 쌓인 데이터가 한몫을 했습니다. 업종과 규모, 성장 계획 등 서로 다른 조건의 회사들과 자본금을 설계하며 축적한 시간을 바탕으로 창업을 시작하는 이들이 첫 발을 떼는 데 용기를 건네는 중입니다.

마치며

자본금 문제는 회사 운영에서 반복되는 한 가지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고 당장은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시간이 지난 뒤 구조적인 기준으로 되돌아오는 선택입니다. 이렇듯 창업자들이 겪는 운영상 문제의 상당수는 나중에 발견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ZUZU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법인 설립 단계부터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설립 단계에서 정해지는 구조가 이후 운영 전반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죠.

그 시작은 등기입니다. 자본금을 정하고 주식을 나누는 모든 선택은 등기를 통해 법적 효력을 갖습니다. 등기부에 기재된 내용은 이후 모든 판단의 기준점이 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등기 제도의 본질은 무엇인지, 지금의 창업자들이 등기 문제로 어떤 혼란을 겪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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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서광열(코드박스 | ZUZU CEO)

국내 대표 비상장 기업 주주 관리 플랫폼 ZUZU를 운영하는 코드박스의 대표입니다. ZUZU를 통해 기업이 자본시장과 더 빠르고 안전하게 연결되도록 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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