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등기로 갈라지는 회사의 운명 - 등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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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6년 2월 27일
목차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은 단서 하나만으로도 전체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인데요. 다소 냉정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꽤 현실적인 태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들여다볼 수는 없기에 몇 가지 사실을 근거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투자 시장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투자자는 회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검토하기 전에 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을 먼저 확인합니다. 그리고 이 단계에서 문제가 보이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의외로 가장 기초적인 문서, 등기입니다.
하지만 실상 대표 입장에서 등기는 참 손이 안 가는 일입니다. 챙길 서류는 많은데, 대표이사 변경이나 투자 같은 중대 사건이 터지면 보통 ‘2주’라는 짧은 기한 내에 처리해야 하죠. 등기는 해야 하는 건 알지만 당장 매출과 연결되지 않으니 자꾸 미루게 되는 귀찮은 숙제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업들 사이의 결정적 격차가 벌어집니다. 등기를 대하는 태도는 곧 회사가 자본을 대하는 태도와 같기 때문이죠. 우리는 등기를 남들과는 다르게 봐야합니다. 등기는 회사의 내실을 입증하는 최소한의 품격이니까요.
왕의 허락 없이 회사를 만들 수 있게 된 순간
회사를 등록한다는 오늘날의 상식은 1844년 영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합자회사법(Joint Stock Companies Act)을 통해 회사의 존재를 공식 장부에 올리기 시작한 것인데요. 그 이전에는 왕실의 칙령이나 의회의 특별법을 통해서만 주식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고, 설립 자체가 특권에 가까웠습니다.
이 법은 이러한 허가 중심 구조를 등록 중심 구조로 전환했습니다. 일정한 절차에 따라 등록만 하면 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되면서, 주식회사 설립의 문턱이 크게 낮아졌습니다.
이후 1855년 유한책임이 일반적으로 인정되면서 등록 제도의 의미는 더욱 커졌습니다. 투자자가 출자액 범위 내에서만 책임을 지는 대신, 회사의 기본적인 정보와 상태를 공개하도록 하는 구조가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등록과 공시는 기업 활동의 자유와 거래의 안전을 동시에 보장하기 위한 장치로 결합됐습니다.
1861년에 이르러 독일에서는 전국 통일 상법을 제정하면서 상업등기제도를 확립했습니다. 이 등기부는 법원(상사법원)이 관할하며 공적 장부로 관리되었습니다. 등기된 사항은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고, 반대로 중요한 사항을 등기하지 않으면 선의의 제3자에게 주장하기 어렵다는 원칙이 자리 잡았습니다.
이처럼 법원이 관리하는 등기부를 중심으로 거래 관계를 정리하는 구조 속에서, 등기는 거래 안전을 위한 핵심 인프라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1962년 제정된 한국의 상법은 독일법 계통의 영향을 받은 일본 상법을 기초로 정비되었습니다. 상업등기 제도 역시 이러한 법체계의 영향을 받아 법원 관할 아래 운영되는 구조로 설계됐죠.
미국은 회사 등록의 방식이 다소 다르게 발전했습니다. 1811년 뉴욕주에서는 일정 요건을 충족한 사람들이 증명서를 행정기관에 제출하면 법인격을 부여받을 수 있도록 하여 기업 설립 절차를 행정적 등록 중심으로 단순화했습니다. 독일처럼 법원이 등기부를 관리하는 구조가 아니라, 주 정부 행정기관이 설립 서류를 접수하고 기록을 관리하는 방식이 일반화되었습니다.
회사 공식 기록 = 시장 신뢰
이러한 차이는 지난 글 <500만원짜리 스타트업으로 시작해도 괜찮았을까 – 자본금 편>에서도 엿볼 수 있었는데요.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거래 안전과 공시 중심의 유럽 대륙법 전통 때문에 법원이 관리하는 등기 제도가 발전했고, 미국은 기업 설립의 자유와 행정 효율을 중시하면서 주 정부 중심의 파일링 제도가 자리 잡은 것이죠.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회사의 권리관계를 공식 기록으로 만들어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정보가 공개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뢰의 출발점이 됩니다. 상대방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야 불안이 줄어들고, 그 위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투자 실사에서 가장 먼저 걸러지는 이유
투자자는 ‘이 회사가 믿을 만한지’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그 과정이 실사(due diligence)입니다. 실사는 회사를 전방위로 검토하는 절차입니다. 실사가 시작되면 투자자는 대개 회사의 법적 골격을 먼저 확인하기 위해 등기부등본, 정관, 주주명부를 기본 서류로 요청합니다.
- 등기부등본은 법원 등기소에 공시된 회사의 기본 정보입니다. 회사의 상호, 자본금, 대표이사 및 임원 등 대외적으로 공시되는 현황이 담겨 있어, 회사가 법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 정관은 회사의 조직과 운영 원칙을 정한 문서입니다. 발행할 주식의 총수 같은 기본 구조와 함께 주주총회·이사회 운영의 큰 틀 등 회사 운영 규칙이 담겨 있습니다.
- 주주명부는 현재 주주와 보유 주식 수 등을 기록한 장부로, 회사가 누구를 ‘주주로 취급할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 자료입니다.
투자자는 이 세 문서가 서로 모순 없이 맞물리는지를 확인해 법적 구조와 지배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려 합니다.
실사를 통과해 투자계약서에 서명했다고 해서 긴장을 놓기는 이릅니다. 투자계약서에는 늘 ‘본 계약 체결 후 일정 기간 내에 유상증자 등기를 완료할 것’ 같은 조항이 들어갑니다. 실제로 상법 체계에서 등기사항에 변경이 생기면 원칙적으로 2주 내 변경등기를 신청해야 하고, 이를 게을리하면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투자자가 진짜로 신경 쓰는 것은 과태료 자체가 아닙니다. 등기 정리가 늦어지면 외부 공시와 내부 문서의 정합성이 흐트러져, 투자자 입장에서는 권리관계를 깔끔하게 확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회사의 관리 체계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셈이죠.
등기 문제는 기록에 남아 끝까지 우리의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새로운 투자자를 만나 실사에 들어가면 과거의 등기 지연·누락은 등기 이력과 내부 문서 대조 과정에서 다시 드러날 수 있거든요. 유상증자 등기 지연, 대표이사 변경 미등기, 임원 중임 등기 누락처럼 실무에서 빈번한 문제는 ‘이미 지나간 일’이라도 이 회사가 기본을 제대로 챙기는 곳인지, 아니면 대충 넘어가는 곳인지 드러내는 장면이 됩니다. 그 결과 회사는 관련 사항에 대한 법적 보증 강화나 까다로운 투자 조건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결국 협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자본시장에서 등기가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은 ‘과락(科落)’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투자를 받을 최소 기준치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죠. 아무리 좋은 숫자와 성과를 내세워도 최소 기준을 넘지 못한 상태에서는 평가의 대상이 되기조차 어렵습니다.
대표는 내일을 준비하고, 등기는 어제를 정리한다
우리가 등기를 미루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대부분의 일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준비하는 데 집중됩니다. 제품을 만들고, 고객을 만나고, 채용을 하고, 다음 달의 매출을 고민합니다. 대표의 일정은 늘 미래를 향해 움직입니다.
그런데 등기는 반대입니다. 등기는 무언가를 하기 위한 일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을 정리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대표이사가 바뀌고, 투자를 받아 신주를 발행하고, 임원의 임기가 끝나 중임을 하는 순간에 처리해야 하는 일이죠.
심지어 등기를 소홀히 했을 때의 리스크 역시 뒤늦게 나타납니다. 등기를 늦춘다고 해서 바로 눈앞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서비스가 멈추거나 매출이 줄어드는 일이 당장 벌어지지는 않죠. 대표의 입장에서는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 등기는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밀리게 됩니다. 앞을 향해 달리는 사람에게, 뒤를 돌아보라고 하는 일. 이것이 등기가 창업자에게 만들어내는 시간의 간극입니다.
과정 없는 등기는 반쪽일 뿐
한편, 여기에는 앞서 말한 시간의 간극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있습니다. 등기를 둘러싼 또 하나의 간극은 우리의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우리에게 등기는 행정 절차에 따른 일종의 결과물입니다. 서류를 제출하고 등기부에 기재되면 일이 마무리된 것처럼 여깁니다. 물론 등기는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법적 효력을 발생시키고, 중요한 결정을 공식화하는 문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장은 그 너머를 봅니다. 투자자는 등기부에 기재된 사실을 확인하는 동시에 회사가 그 결정을 다룬 방식을 추정합니다. 이 회사가 중요한 변화를 어떤 기준 아래 처리했는지, 절차를 얼마나 일관되게 적용했는지를 들춰보는 것이죠. 동일한 등기 결과라 하더라도 그 과정의 일관성이 보장이 되지 않으면 투자자는 등을 돌립니다.
시장은 ‘반복 가능성’에 돈을 겁니다. 등기는 그 판단 기준이 드러나는 기록입니다. 결과만 남고 기준이 보이지 않으면 회사는 예측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결과만 맞춘 등기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등기를 통해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야합니다. 등기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종이 한 장의 결과가 아니라 그 앞단의 과정입니다.
마치며
우리는 지금까지 2가지 간극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앞을 향해 달리는 창업자의 속도와, 지나온 결정을 정리하라는 제도 사이의 시간의 간극. 그리고 등기를 결과로 보는 창업자와, 그 결과를 통해 판단 구조를 읽는 시장 사이의 인식의 간극. 이 2가지 결핍이 만나는 지점에서 회사의 진짜 ‘격’이 결정됩니다.
회사의 비전은 거창한 구호가 아닌 보이지 않는 곳을 정돈하는 집요함에 있습니다. ZUZU는 파편화돼 흩어지는 결정을 시스템 안에 정렬해 ‘등기’라는 행정 절차를 ‘예측 가능한 신뢰’의 자산으로 전환합니다. 어제의 기록을 시스템에 맡긴 창업자는 비로소 과거의 부채에서 벗어나 오직 미래의 성장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시스템으로 완성한 이 꼼꼼한 관리의 차이는 결국 자본 시장에서 우리 회사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바꿉니다. 서류 한 장에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기초를 갖췄을 때, 회사는 비로소 누구도 쉽게 얕볼 수 없는 신뢰받는 회사의 반열에 올라섭니다. 회사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등기부등본, 빈틈없는 관리로 회사의 내실을 지켜내고 싶다면 ZUZU를 이용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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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열(코드박스 | ZUZU CEO)
국내 대표 비상장 기업 주주 관리 플랫폼 ZUZU를 운영하는 코드박스의 대표입니다. ZUZU를 통해 기업이 자본시장과 더 빠르고 안전하게 연결되도록 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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