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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Elad Gil, Josh Buckley, Lachy Groom, Shana Fisher, Ray Tonsing, Oren Zeev (출처: nbt)
최근 3~4년 사이 실리콘밸리에서는 ‘솔로 GP’가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존 다수의 파트너십으로 운용되던 전통적인 벤처캐피탈의 운용 구조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브랜드만으로도 수천억 원의 자금을 모아 투자를 집행하는 벤처캐피탈리스트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과거에도 실리콘밸리에는 ‘슈퍼엔젤’과 같은 자금력을 가진 개인투자자를 일컫는 용어는 많았지만, 솔로 GP는 1) 공식적으로 펀드를 만들어 타인의 자본을 운용하고 2) 자신의 브랜드가 곧 펀드의 브랜드이며 3) 초기 기업에 국한하지 않고 시리즈 C, D 이상 단계까지 리드할 수 있는 자금력을 가진 투자자들이라는 특징을 보입니다.
지브 벤처스(Zeev Ventures)를 이끄는 오렌 지브(Oren Zeev), ‘하이 그로스 핸드북’의 저자로 유명한 일라드 길(Elad Gil), 17살에 핀테크 기업 스트라이프 (Stripe) 초기 직원으로 입사, 25살에 발급 업무 총괄까지 역임한 94년생 래치 그룸(Lachy Groom)은 자신의 명성만으로도 수천억 원의 자금을 모아 운용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대표 ‘솔로 GP’들입니다.
솔로 GP 등장의 의미
국내에서 벤처캐피탈의 운용사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GP는 General Partner의 줄임말입니다. 사모펀드(PE) 및 벤처캐피탈(VC)이 처음 생겨난 미국에서는 펀드 운용의 의사결정권을 가진 ‘제너럴 파트너 (General Partner)’들의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모든 것이 이뤄지다 보니 ‘파트너들의 모임 = 운용사’라는 형태가 일찍부터 자리 잡아 왔습니다.
팀원이나 공동 파트너 없이 단독으로 움직이는 벤처캐피탈리스트를 ‘솔로 GP’라고 구분해서 부른다는 것은, 미국에서도 GP란 최소 두 명 이상의 파트너십을 기본으로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실리콘밸리 대표 벤처캐피탈로 떠오른 안데르센호로위츠는 마크 안데르센과 벤 호로위츠의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탄생한 벤처캐피탈입니다. 현재는 크립토 투자를 이끄는 크리스 딕슨, 그로쓰 투자를 전담하는 데이비드 조지 등 다수의 파트너들이 ‘제너럴 파트너’로서 회사 운영 및 투자의사 결정에 함께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벤처캐피탈 회사가 매주 월요일마다 모여 현재 검토 중인 투자 건들을 공유하며 토론하고, 여러 번의 투자심의위원회를 거쳐 투자 여부를 확정 짓는 프로세스를 가져가는 궁극적인 이유 또한 ‘파트너십 기반의 집단 의사 결정’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 벤처캐피탈에게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월요일 미팅 (출처: Afore)
‘솔로 GP’의 성장은 파트너십 기반의 전통적인 벤처캐피탈 운영 방식에 대한 반작용을 의미합니다. 그 중심에는 ‘초기기업 투자에서 집단 의사 결정 체계를 갖추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점, 그리고 매력적인 투자 기회를 선점하기 위한 펀드 간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집단의사결정’에 수반되는 절차와 과정도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실리콘밸리의 ‘치열한 경쟁 환경’이 핵심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벤처캐피탈 자금을 유치해 본 창업자라면, 투자를 주도한 담당자가 이직하면서 갑자기 낯선 심사역들이 본인 회사의 투자 관리를 담당하게 된 사례, 투자에 관심 있다고 접근했던 심사역이 갑자기 투자심의위원회에서 투자 부결이 결정되거나 감액되었다는 이유로 처음과 다른 모습을 보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벤처캐피탈의 심사역들이 가장 좌절감을 느끼는 시점도 본인이 추진한 투자 건이 투자심의에서 좌절되었을 때, 그 투자 건이 향후 대박 사례가 되었을 때입니다. 그 때문에 어느 정도 업력을 쌓은 심사역들은 자신이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투자사로 옮기거나 규모가 작더라도 자신의 투자사를 운영하고자 하는 이유 또한 ‘투자 자유도’에 대한 갈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만국 공통의 현상입니다.
🔼 솔로 GP의 성장 추이 (출처: AngelList)
솔로 GP들은 이런 모든 투자사 내부의 구조나 역학 관계에서 파생되는 정치적 상황이 벤처캐피탈에 대한 NPS(Net Promoter Score)를 갉아먹는 비효율적인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솔로 GP는 창업자에게 접근할 때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 없이 본인이 의사결정 하면 투자가 확정되며’,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담당자이자 책임자이며’, ‘자금력을 바탕으로 팔로우온 투자도 공격적으로 집행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솔로 GP는 펀드에 자금을 대는 LP들에게 제시하는 장점 또한 명확합니다. 대부분의 벤처 투자사는 파트너십이 깨지면서 사라지지, 성과가 좋지 않아 문을 닫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좀 더 냉정히 이야기하면 성과가 좋지 않게 되면 파트너십이 깨지게 되는 것이죠. 솔로 GP는 이런 지배구조 리스크가 없습니다.
포메이션8은 첫 펀드 투자 완료 후 포메이션그룹과 8VC로 쪼개지게 됩니다. 팬데믹 당시 스팩(SPAC)의 제왕으로 이름을 날린 소셜캐피탈의 차마스는 처음에는 외부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로 시작했지만 이후 파트너 간 충돌이 발생, 기존 멤버들이 독립하여 세운 곳이 트라이브 캐피탈(Tribe Capital)입니다. 사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벤처캐피탈에서 파트너 간 충돌로 팀이 쪼개지거나 문을 닫는 경우는 굉장히 비일비재합니다.
솔로 GP는 ‘자신이 갑자기 사망하거나’, ‘어느 날 펀드 운용이 하기 싫어지는’ 상황이 아니라면 펀드 운용 인력이 변경되는 경우가 없는, 오히려 굉장히 지배구조가 안정된 형태란 점을 강조합니다. 또한 투자 담당 인력이 변경되고 투자 책임자가 퇴사하고, 새로운 인력이 합류한 후 투자 전략이 변경되는 ‘GP 리스크’도 고려할 필요가 없는 형태가 솔로 GP임을 내세웁니다.
솔로 GP의 대표 주자
1️. Oren Zeev (Zeev Ventures)
유럽의 유명 사모펀드 Apax Partners에서 벤처 투자를 이끌었던 오렌 지브는 공식적으로 운용 규모가 가장 큰 솔로 GP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까지 누적 운용 자산은 2.6조 원, 2022년에 조성한 펀드만 1.3조 원에 달하는 Zeev Ventures는 주니어 멤버 및 백오피스, 공동 파트너, 어드바이저도 없이 혼자서 모든 투자의사 결정과 펀드 운용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 Zeev Ventures 홈페이지
오렌은 자신의 투자 전략을 ‘포트폴리오 집중’ 전략이라고 표현합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하므로 펀드 당 투자기업 수를 무한정 늘릴 수 없으며, 될성부른 기업에 공격적인 팔로우온 투자를 집행하며 기업당 10% 이상의 지분율을 유지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결국 투자자들이 오렌의 펀드에 출자하는 이유는 그의 검증된 실력입니다. 오렌은 2013년 상장된 미국의 문제풀이은행 Chegg의 2008년 시리즈A를 리드하였고, 2010년에는 결제 자동화 솔루션 기업 티팔티(Tipalti)를 공동 창업, 직접 시리즈A, C, D를 리드한 바 있습니다. Tipalti는 2021년 말 시리즈F 라운드에서 13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기도 하였습니다.
2️. Elad Gil
국내에도 번역 출판된 스타트업 교과서 ‘하이 그로스 핸드북’의 저자 일라드 길은 구글의 초기 직원으로 합류, 모바일 사업을 이끌다 퇴사 후 Mixer Lab을 공동 창업, 이후 회사를 트위터에 매각한 후 트위터의 초기 성장 전략을 이끈 인물로 유명합니다.
또한 2008년부터 엔젤 투자를 시작한 일라드는 에어비앤비, 코인베이스, 노션, 에어테이블, 피그마, 인스타카트, 오픈도어, 핀터레스트, 리플링, 스트라이프 등 이미 데카콘이 된 다수의 기업에 투자자로 참가한 실리콘밸리 인싸 중의 인싸입니다.
자신의 본업은 스타트업을 돕는 것이지 투자 수익을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회사 이름도 따로 만들지 않고 심지어 운용 자산 규모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는 일라드는 현재 7천억 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Elad Gil의 연간 투자 건수
때로는 시리즈 D나 E 라운드의 리드투자자로 나설 정도로 공격적인 투자스타일을 가진 일라드는 최근에는 또 다른 솔로 GP인 사라 구오와 함께 No Priors라는 AI 산업 관련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3️. Lachy Groom
호주 출신의 94년생 투자자 래치 그룸은 13살에 처음 창업을 시작, 17살의 나이에 이미 4개 기업을 창업해 3곳을 매각하는 데 성공한 천재 창업가입니다. 당시에도 이미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며 트위터나 젠가와 같은 여러 빅테크 기업들이 러브콜을 보냈지만, 당시 초기기업이었던 스트라이프에 합류를 결정하는 선구안을 보여줍니다.
🔼 2012년 호주에서 화제가 된 Lachy Groom (관련 기사)
2019년 스트라이프에서 Head of Issuing 임원을 끝으로 25살에 퇴사한 래치는 이후 솔로 GP 펀드를 조성, 현재는 3천억 원 규모의 3호 펀드를 단독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움직이지만 작년 한 해 발표된 투자 건수만 15건에 달할 정도로 빠른 투자 속도는 래치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오픈AI의 수장 샘 알트만도 자신이 유일하게 커리어 조언을 구하는 4명 중 1명이 래치 그룸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래치의 가장 큰 강점은 어린 나이와 스트라이프에서 쌓은 실리콘밸리 네트워크입니다. 특히 고리타분한 아저씨들보다 20대 또래 투자자를 선호하는 Gen-Z 세대 창업자들에게 래치는 원픽 투자자로 통하는 인물입니다.
솔로 GP를 가능하게 만든 환경
하지만 모든 펀드 출자자가 솔로 GP를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많은 기관투자자들은 여전히 파트너십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갖춘 운용사를 선호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솔로 GP들의 주장과는 달리 자금 운용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기관들은 여전히 개인이 단독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를 ‘기회’보다는 ‘리스크’로 받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솔로 GP와 같은 새로운 운용 형태가 나타날 수 있는 이유는 생태계의 다양성과 개방성, 그리고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벤처캐피탈도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실험 정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1️. 다양한 민간 출자자
정책자금을 바탕으로 성장해 온 국내 벤처캐피탈 산업은 시작부터 정부의 예산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형태를 띠다 보니, 운용사를 선정하는 과정 또한 정부 입찰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업력과 자본금 규모, 운용 인력의 수, 검증된 실적 등 정량적인 요소가 운용사 선정의 중요 요건으로 자리 잡은 것이죠.
따라서 국내 벤처캐피탈은 사업 초기에도 최소한의 팀과 인프라를 갖춰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보통 천억 원 이하 규모의 펀드는 1~2명이 운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국내에서는 운용자산 규모와 관계없이 벤처펀드 운용사라면 최소 3~5명 정도의 인력은 갖춰서 시작하는 것을 기대하는 환경입니다.
반면 실리콘밸리에서 수천억 원의 자금을 혼자서 운용하는 솔로 GP가 가능한 가장 큰 원동력은 민간 출자자의 다양성입니다. 미국은 패밀리오피스, 재단 및 기금, 개인 투자자 등 다양한 투자자가 벤처 펀드에 활발히 출자하는 환경입니다. 그 때문에 운용 경험이 없거나 대규모 팀을 구성하지 않더라도 자신을 믿어주는 투자자만 있다면 얼마든지 펀드 조성에 나설 수 있습니다.
아래 표는 처음으로 1호 펀드를 조성하는 루키 운용사가 주로 누구로부터 자금을 위탁받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미국에서는 **개인 자산가와 패밀리 오피스가 신생 벤처 펀드의 주요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2023 Emerging Manager Survey (First Republic)
오렌 지브는 2015년 페이팔 창업자로 유명한 피터틸로부터 자금을 위탁받아 첫 펀드를 조성할 수 있었습니다. 래치 그룸의 경우 스트라이프 창업자들이 펀드의 주요 LP를 구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조 원의 자산을 가진 성공한 창업자들이 많으니, 이들의 자금만 위탁받아도 상당한 규모의 펀드 조성이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개인 및 패밀리오피스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는 경우, 투자 성과가 최우선 고려요소이다보니 운용 전략에서는 많은 자유도가 주어지는 환경입니다. 국내는 펀드마다 주목적 투자 비율 등 준수해야 하는 제약 조건이 많지만, 미국의 솔로 GP는 개인의 투자 역량에 따라 투자 단계, 섹터, 규모 등에서 큰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투자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아웃소싱과 자동화가 가능한 펀드 운용 인프라
실리콘밸리는 펀드 운용과 관련한 미들 및 백오피스 관리를 위한 다양한 아웃소싱 및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존재합니다. 주주명부를 관리하는 서비스로 유명한 카르타(Carta)는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을 위한 필수 서비스로 성장한 대표적인 서비스입니다.
심지어 카르타(Carta)의 공동창업자는 솔로 GP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K9 Ventures의 마누 쿠마입니다. 혼자서 투자도 하고 펀드 관리도 해야 하는 솔로 GP가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기 위해 고안한 소프트웨어 서비스가 지금은 기업가치 5조 원을 인정받은 유니콘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 펀드 운용을 자동화하는 AngelList 서비스
또 다른 펀드 인프라 서비스로 엔젤리스트가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위한 법인 설립 및 계좌 개설, 엔젤 투자자 및 펀드 운용사를 위한 조합 설립, LP 모집, 수탁 및 컴플라이언스, 포트폴리오 평가와 같은 전 과정을 소프트웨어로 자동화해 제공하는 기업으로,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의 50%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엔젤리스트 플랫폼을 사용하는 것으로 집계됩니다.
마치며
스타트업들이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것처럼 벤처캐피탈 또한 부단한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실리콘밸리의 정신입니다. 또한 정부 자금에 의존하지 않고 무한 경쟁 환경이 펼쳐지다 보니 펀드들 또한 무언가 남들과 다른 것을 추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곳 또한 실리콘밸리인 것입니다. 솔로 GP는 스타트업 투자의 성공 전략이 ‘분석’보다는 ‘속도’, 그리고 ‘브랜드’ 명성보다는 ‘인사이더 네트워크’에 대한 접근이 중시되는 시대가 낳은 새로운 형태의 운용 전략입니다.
우리가 벤처 생태계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주로 스타트업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 자금으로 빠른 성장을 추구하는 스타트업의 특성상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은 벤처 생태계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를 형성합니다. 국내에서도 최근 증가하고 있는 민간 벤처 투자 자금을 발판 삼아 다양한 형태의 벤처캐피탈 혁신이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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