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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상징, 스쿨버스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가면 미국의 역사에서 스쿨버스가 가진 상징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일례로 스파이더맨과 같은 영화에서 늘 볼 수 있는 노란색 바탕에 검은 무늬가 그려진 스쿨버스는 무려 85년 전인 1939년 미 전역에서 ‘내셔널 스쿨버스 글로시 옐로우’란 색상으로 표준이 정해진 디자인입니다.
미국에서 스쿨버스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비록 미국의 교육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지만, 평등한 교육 기회 제공과 사회적 통합이라는 핵심 가치는 스쿨버스와 관련된 다양한 법적 발전 과정 속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 스쿨버스는 미국 교육의 평등한 접근성을 상징합니다. 넓은 국토와 다양한 지리적 조건을 가진 미국에서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으며, 스쿨버스는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 스쿨버스가 통합의 상징이 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1954년 미국 대법원의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입니다. 이 판결은 인종에 따른 공립학교의 분리 교육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선언한 내용인데, 이는 흑인 민권 운동이 발발한 1955년보다도 앞선 시점입니다.
- 스쿨버스는 ‘어린이 안전’에 대한 미국 사회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합니다. 차체 제작부터 법으로 가장 엄격한 규정을 제정하고 있는 탓에 미국의 스쿨버스는 대형 트럭이나 장갑차의 프레임을 채택하고 있으며, 열차와 충돌하더라도 찌그러지지 않고 튕겨나가는 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미국 스쿨버스와 달리는 열차의 충돌 영상
미국 사회에서 스쿨버스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상징성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관련 산업이 보수적이며 전통과 안정성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스쿨버스 시장에 도전장을 낸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주 싱가폴 국부펀드 GIC의 리드로 1,900억 원 ($140 million) 규모의 시리즈 E 라운드를 마무리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줌(Zūm)입니다.
어린이 통학의 우버가 스쿨버스 시장에 뛰어든 까닭
2015년 설립된 Zūm의 창업자 리투 나라얀 (Ritu Narayan)은 자신의 문제에서 출발해 창업에 뛰어든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진학 전 이베이에서 근무하며 맞벌이 부부가 아이들의 픽업 및 과외활동에 데려가기 위한 믿을 만한 서비스가 전무하다는 점에 착안,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어린이 전용 운송 서비스를 시작한 것입니다.
🔼 사업 초기에는 문자 그대로 ‘아이들을 위한 우버’ 서비스를 제공한 Zūm
실리콘밸리 베이 지역은 보통 오후 2시가 넘어가면 교통 체증이 시작됩니다. 학교가 2 - 3시면 끝나기 때문에 아이들을 픽업해 집에 데려가거나 다양한 과외 활동에 보내고자 하는 많은 부모들이 오전 6시 출근 - 오후 2시 퇴근과 같은 유연 근무를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아이 돌봄 서비스가 통학 서비스로 옮겨온 형태입니다.
믿을만한 라이더를 섭외하고 신규 고객을 유치하면서 한 땀 한 땀 사업을 키워온 나라얀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도전하지 않던 문제’에 과감하게 뛰어든 비전과 실행력을 인정받아 꾸준히 투자 유치에 성공하며 규모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 2017년에는 세콰이어캐피탈이 시리즈 A 투자자로 참여하였으며, 2018년에는 스파크캐피탈이 시리즈 B 라운드를 리드하였습니다.
🔼 Zūm의 시리즈 A - D 라운드 주요 투자자들
문제는 특정 버티컬을 공략하는 마켓플레이스 기업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명확했다는 점입니다. 서비스의 특성상 꾸준히 한 단계씩 성장은 하지만 벤처투자자들이 기대하는 폭발적인 성장은 애초에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Zūm이 제공하는 프라이빗 라이더 서비스는 아무리 원가를 낮춰도 해당 서비스에 지갑을 열 수 있는 일부 부유층을 위한 서비스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2018년부터 학교가 운영하는 스쿨버스 시스템을 통해 일부 구간에 대한 계약을 수행해오던 Zūm은 결국 고객들이 직접 Zūm 택시를 불러 자녀들을 이동시키는 우버형 모델을 버리고 학교의 스쿨버스 시스템이 촘촘하게 담당하기 어려운 소규모 라우트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스쿨버스 운영 서비스에 본격 뛰어들게 됩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전에 없던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특히, 학부모, 학교, 라이더와 같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참여자들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구매하는 사람(학부모)과 실제 이용하는 사람(자녀)이 다른 서비스를 운영한다는 점은 상당한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반면 이미 5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스쿨버스 산업에 진출한다는 것은 서비스를 뾰족하게 만들고 차별화된 기능들을 무기로 고객을 설득할 수 있다면 해 볼 만한 도전이었습니다. 마치 버스 운행 사업이 자리를 잡은 상황에서 마을버스 서비스가 손쉽게 틈새 노선을 노리며 등장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 미국 1위 스쿨버스 운행 사업자 퍼스트 스튜던트 (First Student)
미국의 1등 스쿨버스 운행 사업자는 퍼스트 스튜던트 (First Student)입니다. 미국 전역에 걸쳐 서비스를 제공하며 수천 개의 학교와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보유하고 있는 버스의 규모만 4만 4천 대에 달하는 퍼스트 스튜던트의 연간 매출은 10조 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2021년 사모펀드인 EQT 인프라가 약 6조 원 ($4.6 billion)에 경영권을 인수한 바 있습니다.
EQT Infrastructure Closes Acquisition of First Student and First Transit
Zūm이 운행하는 버스가 총 4천 대 남짓이니 아직 퍼스트 스튜던트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입니다. 하지만 이번 GIC의 라운드에서 회사는 1.8조 원 ($1.3 billion)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경쟁사 대비 빠른 성장성과 전기버스 도입 및 앱을 통한 실시간 트래킹 등 기술 혁신성을 인정받은 결과입니다. 특히 신규 업체임에도 불구, 최근 여러 카운티의 스쿨버스 운행 입찰에서 높은 승률을 기록해 온 점 또한 십분 반영된 결과입니다.
🔼 2021년 샌프란시스코 지역 스쿨버스 운행 입찰을 따낸 Zūm
반면 빠른 시장 확장으로 인한 성장통도 겪고 있습니다. 2023년 8월 볼티모어 호와드 카운티 지역에서 새롭게 사업자로 선정된 Zūm이 운전자를 제때 모집하지 못해 학기 시작에도 불구 스쿨버스 운행이 원활하지 못하자 미국 전역에 뉴스가 전해지며 별점 테러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Zūm은 이미 여러 차례 학교 측에 우려를 전했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성난 학부모들은 오히려 미리 대체인력을 준비하지 못한 Zūm을 비난하는 상황입니다.
The Hard Thing about Hard Things
2017년 처음 만났던 리투 나라얀은 전형적인 고객 밀착형 창업자였습니다. 자신의 주변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자신과 똑같은 문제를 경험했던 고객들의 정성이 담긴 리뷰에 감동하고, 고객 한 명 한 명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자신의 창업 경험담을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나라얀이 이제는 각 지역 교육 위원회를 찾아다니며 수백억 원의 계약을 수주하기 위해 공격적인 입찰도 마다하지 않는 전사로 변신하였습니다. 나라얀 또한 인터뷰에서 회사의 뿌리이자 레거시와도 같은 자녀들을 위한 우버 서비스를 전면 중단하고 스쿨버스 사업에 집중하는 것이 창업 기간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의사결정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 Zūm 창업자 리투 나라얀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피벗을 결정한 이유는, 바로 수 백 명이 근무하는 조직으로 성장한 Zūm이 언젠가는 자신이 사업 초기 가졌던 비전과 목표 이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방향성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합니다.
Zūm은 여전히 북미 스쿨버스 시장의 95% 이상이 잠재 기회라며 여전히 Day 1 정신을 새기고 있습니다. 사업 모델을 적시에 변경한 덕분에 2021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에 이어 2024년 GIC의 대형 투자도 유치할 수 있었습니다. 과연 Zūm의 다음 여정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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