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특허 이야기 - 표준특허의 필요충분조건

들어가며

제가 변리 업무를 하면서 가장 비중이 크고, 또 많은 성과를 쌓아왔던 부분이 표준특허 창출입니다. 표준특허는 특허업계에서 수익성 좋은 분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표준특허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변리사는 많지 않습니다. 표준화 절차나 표준 규격/기술에 대한 장벽 때문에 표준특허 분야는 진입이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기업의 IR 자료 또는 연구계획서 등을 보다 보면 “표준”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예를 들면,

• 본 기술 개발을 통해 글로벌 표준을 선도할 것으로 기대하며
• XX 기술을 표준화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간혹 제 기준에서는 ‘표준’이라는 단어가 남용되는 것 같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물론, 같은 단어라도 각 필드에서 받아들이는 정의가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표준특허(또는 표준필수특허) 만큼은 저희 특허업계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이번 기고에서는 표준특허에 대해 소개하려 합니다.

표준이란?

표준특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표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표준을 이해하기 위해 아래 단어들의 의미를 이해해야 합니다.

표준 / 표준문서 / 표준화 기구 / 특허

이 중 특허의 의미는 어느정도 아실 것이라 생각하고 나머지 단어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표준 및 표준문서

표준은 하나의 약속입니다. 약속이 통용되는 지역적 범위를 기준으로 특정 국가에서만 통용되는 국가 표준, 특정 지역(예를 들어, 특정 대륙)에서 통용되는 지역 표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국제표준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표준은 합의에 의해 공인된 기관에서 승인된 것으로서 제품 또는 기술에 대해 정한 규칙, 지침을 의미합니다.말이 좀 어렵네요. 쉽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전세계 어느 곳에서나 사용하시는 장비의 기종에 관계없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터넷에 적용되는 기술이나 방법론 중 상당부분이 표준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마찬가지로 우리는 휴대폰의 기종이나 통신사에 관계없이 무선통신망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무선통신 기술 중 상당부분이 표준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표준은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원활한 의사소통, 공공의 이익, 무역장벽 제거 등을 위해 제품, 서비스, 프로세스에 대해 통일된 규격을 정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표준문서는 표준에 의해 정해진 규격을 정리한 문서입니다.

2. 표준화 기구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표준이 존재합니다. 기계/전기전자/정보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여러가지 표준들이 존재합니다. 각각의 분야마다 표준을 정하는 기구가 존재합니다. 표준화 기구는 표준을 정하는 주체입니다. 표준화 기구에는 다양한 멤버들이 참여합니다.

일반적으로 공적 표준의 경우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이 멤버로서 참여하며, 사실상 표준의 경우 기업이나 개인이 참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공적 표준화 기구로 ISO, IEC, JTC 1, ITU-T, ITU-R 등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실상 표준화 기구로는 ETSI, IEEE, 3GPP, IETF, OMA, W3C, oneM2M 등이 있습니다.

앞서 사례들을 중심으로 말씀드리면 IETF는 인터넷 기술에 대한 사실상 표준화 기구이고, 3GPP는 무선통신 기술에 대한 사실상 표준화 기구입니다.

저는 표준특허에 입문할 때에 “사실상 표준화 기구”라는 표현이 어색했는데요.

보통, 공적 표준화 기구라 하면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들이 모인 기구, 또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대표 기구나 단체 등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제 기술을 선도하는 주체는 공적 단체가 아닌 기업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5G 무선 통신 기술의 경우, 삼성전자, QUALCOMM, ERICSSON, HUAWEI, ZTE 등등의 기업들이 모여서 사실상 표준화 기구인 3GPP를 운영합니다. 3GPP의 멤버들(삼성전자 등)이 국가를 대표하는 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공적 표준화 기구라 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선 통신 시장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멤버들은 3GPP의 멤버들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적 표준화 기구(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TTA)는 3GPP에서 정해진 사항을 그대로 준용하여 표준을 정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3GPP도 대표적인 “사실상 표준화 기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표준특허

표준특허는 표준화 기구에서 제정한 표준규격에 대응하는 특허를 의미합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표준특허는 표준문서의 규격을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해당특허를 침해하지 않고 구현할 수 없는 특허로, 표준특허(Standard Essential Patent, SEP)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특허가 표준특허인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특허의 청구범위와 표준문서를 비교합니다.

특허가 표준특허가 되기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래 그림과 같이 특허 청구항(적어도 하나의 독립항)의 구성요소가 모두 표준문서의 규격에 매칭되는 경우입니다.

만약, 특허 청구항의 구성요소들 중 어느 하나라도 표준문서의 규격에 매칭되지 않는다면, 표준규격을 따르면서 특허의 권리범위를 회피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구성요소가 표준에 맵핑되는 독립항이 존재하는 특허만 표준특허의 요건을 만족합니다.

특허권의 가치를 평가할 때에 i) 권리범위의 회피가 가능성, ii) 침해 적발의 용이성, iii) 특허제품의 시장규모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표준특허는 위 세가지 측면에서 매우 유리한 장점들을 가집니다.

1. 표준특허는 사실상 회피가 매우 어려움

일반적인 특허의 경우, 경쟁사가 회피설계를 통해 특허 권리범위를 회피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표준특허는 표준문서의 규격의 내용 중 일부를 권리범위로 가집니다. 따라서, 해당 표준문서 규격을 따르는 제품/서비스의 제공업자는 표준특허의 권리범위를 회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2. 표준특허는 침해 적발이 매우 용이함

일반적인 특허의 경우,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나 소스코드의 해석, 제조공정의 확인 등을 통해 특허 침해를 입증해야 합니다. 특허 침해의 입증책임이 특허권자에게 있는 반면, 침해를 입증할 수 있는 정보는 특허권자의 상대방에게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특허권자 입장에서 특허침해를 입증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표준특허의 경우 특허권자가 특허의 청구항이 표준문서에 대응된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침해를 쉽게 증명할 수 있습니다.

3. 제품의 시장 규모

통상적으로 표준이 지정되는 제품이나 서비스는 그 시장규모가 매우 큰 편입니다. 따라서, 특허권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됩니다.

이처럼 표준특허는 다른 특허에 비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표준특허가 남용될 경우, 공공의 이익을 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특허권의 행사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습니다. 반면, 표준특허에 대해서는 관련 표준화 기구가 정책적으로 권리 행사에 제한을 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표준화 기구에서 규정하는 표준특허 관련 정책에 대해서는 후속 포스팅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표준특허의 개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부족하지만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표준특허의 개념에 대해 어느정도 감을 잡으시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포스팅을 작성하다 보니 여러가지 표준화 기구들의 현황, 표준특허에 대한 IPR 정책들, 제가 주로 담당하는 3GPP 표준에 대한 소개 등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요. 이런 이야기들을 후속 기고에서 다루겠습니다.